개혁주의 선교관 – 김북경 선교사

By | 2017-06-26

선교와 신학은 같이간다 (Mission and Theology go together)

그러므로 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모토로 선교하는 고신 교회는 선교하면서 신학해야 하고, 신학하면서 선교해야한다. 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 신학하는 자들은 선교를 게을리 하고, 선교하는자들은 신학을 깊이하지 않을 때 천박한 선교나 세류에 휩싸여 떠내려가는 선교를 하기도하였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선교신학은 개혁주의 신학을 기초로 개혁되어져가는 (Reforming) 선교신학을 끊임없이 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미 이것이 전부이다라고 선교신학을 고정하는 때부터 그 선교신학은 어떤 의미에서 고착화되고 부패할 것이므로 우리는 쉬임없이 신학하면서 선교하고 선교하면서 신학해 가야 할 것이다.

독일 福音主義 신학자들이 작성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기독교의 선교란 교회와 충분한 권위를 부여 받은 전도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설교, 상례, 봉사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증거하고 제시하는 것이다”1) 라고 선교신학을 정의하였다.

단 여기서 우선순위를 생각해야하는데 사회 봉사는 전도의 결과로 해석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개혁의 선봉자였던 칼빈도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regnum Christi)을 확장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주장했었다.2)

선교신학이란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에 위임된 위임받은 大使命, 즉 교회가 계속해서 실행해 나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인 세계 복음화를 실천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의 중심은 “어떻게(how) 선교할 것인가?” 가 중심이 아니라, 왜(why) 하는가? 이다. 선교신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 선교의 기초가 무엇인가를 하나님의 啓示인 성경 본문을 통해서 전달하고 계시에 나타난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의 말씀을 이 세상에 모든 민족에게 전달함으로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그곳, 그 민족에게서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과는 바로 하나님의 榮光으로 귀결된다.

개혁주의란 일반적으로 칼빈주의를 말한다 그리고 정치 형태로는 장로주의를 표방하고 그 정신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절대 主權 사상이고 오직 성경이라는 것으로 그 특성을 표현하기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敎理적인 측면에서는 역사적 개혁주의요, 교회사적으로는 전통적 正統保守주의이며, 교회정치에 있어서는 장로주의 體制가 성경적 교회의 고유한 正體라고 믿는다.

1) 성경 중심의 선교신학이다

개혁주의 선교신학은 개혁주의 성경신학과 함께 간다

개혁주의자들은 교회가 은총의 복음이 선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듯이 개혁주의 선교신학은 선교사역의 최우선적인 과제가 바로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사도적 선교신학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다.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는 종교개혁자들의 표어였다. 인간에 의하여 세워진 전통이라는 부패한 칼집에서 뽑아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부패하고 편협 된 폐부를 꿰뚫었다. 그리고 그들을 변화시켜 새롭게 하셨다. 그것은 교회를 살렸고 급기야 민족들을 새롭게 하셨다. 따라서 개혁주의 선교관을 가진 선교사들은 사도적 가르침, 즉 예수는 그리스도이심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선포를 그들 사역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머지 행위는 그것을 전하기 위한 도구이다.

개혁주의 선교는 그 기초를 성경에 두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오직 구원에 이르는 지혜(딤후 3:15)를 얻을 수 있다.

2) 교회론 중심의 선교신학이다

개혁주의 선교신학은 개혁주의 교회론과 함께간다

구체적으로 말해 교회의 특성 중에 使徒性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선교임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전도하여 제자삼고 성례를 베풀고 주님이 가르쳐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는 중심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개혁주의 선교신학은 선교지에서의 교회 설립을 그 목적으로 한다.3) 이 세상에서 교회는 단지 하나 뿐이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이며 바로 그 주님이 머리되시는 교회이다. 다시 말해 교회의 宇宙性이다. 이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위대한 信仰告白 위에 세워진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것이다. 바른 교회 설립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선포가 바로 선교인 것이다.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선교사상은 선교단체나 선교학자들이 가지는 부정적인 선교관이 아니라 오히려 칼빈주의 신학이 선교에 열려있는 신학체계임을 보여준다. 칼빈은 그의 사 53:12의 설교 중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에 충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 가서 전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께 나아오게 하여야 한다”

또한 기독교강요 제4권의 교회론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주님께서는 이 복음의 보화를 교회에 맡기셨다”, “양의 우리 밖에 많은 양들이 있고, 양의 우리 안에 많은 이리가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선교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즉 하나님의 비밀스런 구원의 역사를 놓고서 교회는 복음전파에 힘써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정회원으로 받는 聖禮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구속의 은총을 담아내는 가장 중요하고도 변화할 수 없는 교회의 禮典이다. 따라서 선교도 다른 사역의 수행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전달하고 세례를 베풂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은혜의 방편으로서 성례를 바르게 집행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권의 장엄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민족들에게 그 성례 참예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3) 삼위일체 중심의 선교신학이다

최근에 자유주의 선교신학을 대표하는 Missio Dei 선교신학이 개혁주의 선교신학에 큰 도전을 주고 있다. 이들의 사상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하여 인류에게 말씀하신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오늘날의 구원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며 구속이(Redemption) 아니라 인간화가(Humanization) 그 목표가 되고 있다. 4)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복음증거에 대한 거부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권세를 제한하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성도가 이웃에게 그리고 불신자에게 놀라운 구원의 길을 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요, 주 예수님의 권세와 십자가의 죽음과 덕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선교하지 않음에 대해서 경고한다.

칼빈의 딤후 1:8-9으로 “선교에로의 부름”이란 설교에서 세계선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만약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죽어 장사되어 무덤 속에 아직 있는 것이 된다” 라고 말하면서 성도의 선교적인 열정이, 많은 사람의 구원으로 나타남을 강조하였다.

또한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이방인에 대한 장벽을 제거하였으며, 선교의 기초가 됨을 주장한다. “하나님은 유대민족과 다른 민족들을 구분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전제로 한 차별을 철저히 제거하셨다” 라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음 전파로 말미암아 전 세계에 흩어진 사람들이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했다.

개혁주의 선교신학은 성부와 성자 성령하나님이 그의 교회를 통하여 동일하게 시대를 초월하여 경륜론적으로 선교를 주도해가신다고 믿는다. 인간들은 그의 심부름군이요 도구인 것이다. 선교는 三位一體 하나님의 세계 경영이요 , 세상을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민과 긍휼에서 나오는 일체의 역사인 것이다.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그 분께 돌려야한다.(롬11:36)

나가는 말

개혁주의 혹은 칼빈주의5)라고 하지만 개혁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개혁신앙은 하나님 ,성경 그리고 교회를 우리의 생각과 삶에 中心 에 두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는 정신이 바로 개혁주의요 그런 관념으로 선교 현장에서 선교하는 것이 개혁주의 선교관이다.

이와 같이 개혁주의 선교신학의 근본은 선교사역의 근원, 동기,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 敎會를 통하여 진행되는 선교신학이며,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으로 진행되는 세계경영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 선교관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선교의 목적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
둘째, 선교의 근거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셋째, 선교의 능력으로서 삼위이신 성령 하나님

넷째, 선교의 내용으로서 변함없으신 삼위 하나님의 말씀이다.(sola scriptura)

1) Peter Bayer:Missions Which Way? Humanization or Redemption(GrandRapids:Zondervan house,1971,116

2) 필립 휴즈(Philip E. Hughes)나 칼 스티븐슨(Carl D. Stevens)이 주장하는 바처럼 칼빈의 제네바교회에서는 4명의 성직자와 프랑스 위그노 일단을 리오 데 자네이로 보내 박해 받는 개신교도들을 위해 영지를 개척한 일이 있는데, 이것은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며, 제네바아카데미에서 수학한 1백여 명이 넘는 이들을 프랑스에 보내 개혁교회운동을 전개한 것도 선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성경주석과 설교에서 복음증거와 전파를 수없이 언급했기 때문이다

3) J.Verkuyl Contemporary Missionlogy an Introduction 최정만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42

선교의 목표는 이교도들의 개종과 ,교회 세우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이다

4) J.Hrbert Kane 선교 신학의 성서적 기초, 이재범 도서출판 나단,1990, 17

5) 칼빈주의를 정의하는 다양한 분류

(1).Hyper Calvinism 칼빈 사후에 나온 용어로 베자가 주장하였다.

Supralapsarianism(타락전 선택설)을 동의하는 칼빈주의적인 반율법주의(Calvinistic Antinomianism)이다. 특별은총만을 주장하여 인간의 책임성을 약화시켜 전도·선교무용론을 주장한다. cf) 루터는 Grace와 Law를 대립 관계로 보지만 칼빈은 Law in Gospal로 보아서 복음안에 이미 율법이 용해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Hyper Calvinism(James Henry Thomwell.1860) cf.C.Hodge 인간의 믿음의 영역을 극소화 시킴

(2).주류 칼빈주의(Mainstream Calvinism)

Covenant Theology ( New England Puritain : covenanter )

(3).Lower Calvinism

Amyraldianism:제한속죄(Limited Atonement) 대신에 Universial Atonement를 주장한다 대표적인 학자는 K.Barth인데 그도 역시 자신을 칼빈주의자라고 자칭한다.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이라는 조건성을 약화시키는 부류로 TULIP중 ULIP 4개만 인정(Four points Calvinism)한다.

4.국가별 Calvinism

각 국가마다 나름대로 독특한 면을 나타낸다. 스위스 ,프랑스,화란,잉글랜드,스코틀랜드(각기 교단과 헌법이 있음)

5.교회 형태별

회중교회,성공회,침례교회로서 Calvinism의 성격을 띤 일부 교회들을 말한다.

얀센주의(Jansenism):로마 카톨릭 내에 있으면서 칼빈주의적 교리를 수용